< 한걸음을 걸어도 나답게 > (2)

윤필립 칼럼

< 한걸음을 걸어도 나답게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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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살이던 1999, 나는무용계의 아카데미로 불리는 브누아 드 라당스에서춤의 영예라는 뜻의 최우수 여성 무용수상을 받았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서 오랜 군무 시절에 지나 <카멜리아 레이디>의 주역으로 활동하던 나는 최우수 여성 무용수상을 받으며 무용계의 별로 떠올랐다. 이는 세기의 발레리나가 됨을 의미했다. 

 

발레는 내 인생이었다. 발레 외에 다른 일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발레리나들이 은퇴를 생각하는 33살의 나이. 나는 그 나이에 힘든 재활 기간을 견뎌내고 재기에 성공했다. 예전에 부상을 숨긴 채 공연했을 때는 금이 간 뼈 때문에 점프할 때마다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아팠다. 공연을 마치고 무대 밖으로 나올 때 엉엉 울면서 나올 정도였다. 고통 때문에 얼굴이 찡그려질까 봐 다친 다리에는 힘을 빼고 한 다리로 춤을 추다시피 하고 내려온 무대도 많았다. 하지만 재활을 마치고 나온 몸은 예전과 달랐다. 점프가 훨씬 더 쉽고 몸도 어느 때보다 더 단단하고 가벼워졌다. 절망으로 가득한 시간을 거치면서, 이제까지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늘 지금 이 무대가 마지막 무대라고 생각하고 발레를 해왔다. 하지만 힘든 시간을 지나오면서 내가 발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몸으로 표현하는 일이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지를 절실하게 깨달으면서, 앞으로 얼마나 더 무대에 설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진정 사랑하는 무대에 한 번이라도 더 서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몸이 아플 땐 고통을 이겨내면 그만이었지만, 마음이 아플 땐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살기 위해서는 이겨내야만 했다. 내리막 없이 승승장구만 하는 인생은 없다. 누구나 잘하다가도 떨어지는 때가 있다. 최고의 순간이라 믿었던 때가 최악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인생의 리듬이라 믿는다. 나는 내 인생에 찾아온 수많은 위기를 겪으며 강해졌다. 최고의 순간은 최악의 순간을 밑거름 삼아 만들어진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 부부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존중한다. 나는 사람이 타고난 성격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개성이 강한 우리가 다툼 없이 살아가는 것은, 서로를 바꾸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의 성격에서 고칠 점을 찾기보다, 좋은 점을 받아들이고, 단점을 보완하려 노력한다. 서로의 기울어진 면을 지탱해주고, 흠이 있는 면을 가려준다.

 

나는 종일 발레 생각뿐이었다. 아무리 피곤해도 발레 생각만 하면 즐거웠다. 발레만큼은 완벽해지고 싶었기에 아주 작은 디테일도 꼼꼼하게 챙기고 연구했다. 그러다 보니 남자 무용수들 사이에서 나는 깐깐하기로 유명했다. 작은 것 하나 그냥 지나가지 않는 성격 때문이다. 발레리노들은 나와 연습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만큼 나와 함께 공연하고 싶어 했다. 나와 공연하면 실력이 늘고 더 멋진 공연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었다.

 

발레와 인생은 공통점이 많다. 발레도 인생도 절대로 혼자서는 해나 갈 수 없다. 혼자 사는 세상이라면 북을 치든 장구를 치든 혼자 알아서 하고, 그에 대한 책임만 깨끗하게 지면된다. 하지만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이다. 누구나 최고의 파트너를 만나고 싶어 한다. 내가 남에서 베스트 파트너가 되면, 베스트 파트너를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 주위를 살펴보라. 만일 베스트 파트너가 눈에 잘 띄지 않는다면, 내가 다른 사람에게 베스트 파트너가 되어줄 준비가 되었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발레 계뿐 아니라, 어떤 영역이건 실력이 국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만의 개성이 확실하면, 내 본연의 가치로 인정받을 수 있다. 투정하고 변명하고, 핑계 댈 시간에 실력을 쌓는 편이 낫다. 실력을 갖추면 운도 내편이 되고, 외부 환경도 나를 위해 움직이고,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몰려든다. 내가 한국인인지, 독일인인지, 브라질인인지의 구분은 무의미해진다.

 

30년간 발레를 하면서 수천 번, 수만 번 넘어졌다. 무대에서 넘어지고 부상을 입어도 웃으면서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건 애잔한 일이 아니다. 다시 일어나지 않으면 삶은 이어지지 않는다. 살면서 잘한 선택도 많았지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후회되는 일도 많다. 그럼에도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유는, 지금 포기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꿈은 손끝에 닿아 있다는 것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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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필립  |  필리핀 중앙교회 담임목사, 아브라함 신학교 총장 

              저서 : ‘그들에게는 예수의 심장이 뛰고 있다',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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